새로운 여행지를 방문하는 일은 두렵기도 하지만, 설렘으로도 다가오곤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여행지 중 하나인 사이판에서 약 5km만 더 가면 원시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섬 하나를 만날 수 있는데요. 바로 ‘티니안’ 섬입니다. 이곳은 사이판의 1/2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으로 한적하고 낭만적인 자연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죠.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약 10분 정도만 가면 되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터라 인적이 드물고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로 유명한데요. 많은 분이 몰랐던 이 섬 인구의 약 40%는 놀랍게도 한국계죠. 오늘은 이 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잊혀진 지옥 섬 ‘티니안’


남태평양의 작은 섬 티니안. 이곳은 북마리아나 제도에 있는 섬으로 인구는 약 3천 명, 원주민은 차모로족인데요. 그런데 티니안 섬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입니다. 아무리 봐도 남태평양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국인의 모습이죠.

이들의 성은 King, Sin, Choi 등인데요. 조부나 증조부의 성인 김, 신, 최를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부 조선인들은 강제로 티니안 섬에 끌려와서 전쟁 노동자와 전투병으로 착취당했는데요. 현재 이 섬의 40%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당시 끌려온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후손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과 일본이 절대 놓칠 수 없었던 전략 요충지였던 티니안은 1944년 7월 미군에 의해 점령되는데요.당시 일본군은 섬에서 후퇴하며 조선인을 죽이거나 자살로 몰았는데요. 이때 살아남은 조선인은 약 2,500여 명이죠.

지옥 같은 강제노동과 총알받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한인회를 결성하고 상륙한 미군에게 자발적으로 협조하게 됩니다. 근근이 받은 봉급을 모아 미군에게 성금을 보내거나,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는 독립자금으로 보내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죠. 일제가 철저히 은폐했기 때문입니다.

곳곳에 남겨진 전쟁의 흔적


티니안은 과거 스페인과 독일, 일본 등에 거친 식민 지배 시절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아있죠. 섬 북쪽에는 2차 대전 당시 활주로로 쓰였던 넓은 길이 남아있는데요.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비행기 B-29가 출발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원자폭탄을 탑재했던 곳에는 원폭 탑재기 발진 기념비가 서 있죠.

전쟁 중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조선인들의 유골들이 발견된 후,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한국인 위령탑을 세우기도 했는데요. 위령탑은 당시 죽은 조선인들을 화장한 화장터 바로 옆에 있죠. 매년 티니안에 사는 한국계 후손들이 이곳에서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섬의 남쪽 끄트머리인 카라나스 고지 동쪽에는 자살절벽이라 이름 붙은 곳이 있습니다. 사이판의 자살절벽과 마찬가지로, 미군에 쫓기던 일본 패잔병들과 가족 1만여 명이 투신자살한 장소인데요. 그들 중에는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들도 있었죠.

떠오르는 휴양지로 주목받기도


현재 티니안은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북마리아나 제도의 휴양지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이판보다는 작은 면적이지만, 거주민은 현저히 적어 광활한 자연이 있는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이죠. 섬의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인 산 호세를 중심으로 열대 기후 속의 드넓은 목장과 푸른 바다, 역사적인 장소 등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데요.

특히 티니안에는 많은 해변이 있지만 한 때 왕족에게만 허락되었던 타가 비치가 가장 유명합니다. 해변 전체가 아늑한 절벽에 둘러싸여 있어 독특한 모습인데요. 타가 비치는 티니안을 터전으로 삼은 고대 차모로족의 족장이었던 타가와 그의 가족들만이 해변에 입장 가능한 시절이 있었을 만큼 특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죠.

티니안의 중심부를 쭉 뻗은 직선으로 가르는 도로 브로드웨이는 이 섬의 필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인데요. 섬의 남쪽과 북쪽을 시원하게 잇는 도로를 질주하는 것만으로도 티니안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죠. 곧게 뻗은 이 도로는 뉴욕의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도로 브로드웨이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