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당시
무능한 일본 군부의
대표적인 사례 ‘카미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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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단순히 병사들이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휘부의 효율적인 작전 지시와 판단을 최소한의 아군 손실로 최대한의 피해를 상대에게 입힐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능한 지휘부는 병사들의 희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의 사례는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또 최근 발생한 사례를 우리는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 군부가 자신들의 파일럿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살 특공대 작전, 가미카제 작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전이 왜 지휘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증거인지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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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115 츠루기는 오직 폭탄만 실을 수 있었으며, 흔한 기관총도 장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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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XY-7 오카는 오직 자폭 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오히려 미사일에 더 가까워 보인다. 직접 조종해야 한다는 점만 빼면.

파일럿과 전투기
중요한 자원을
낭비한 작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내부에는 ‘반자이 돌격’과 ‘할복’과 같은 군인들의 생명을 경시하는 부조리한 문화가 깊이 내재해있었다. 이에 따라 일본 육군은 병사가 폭탄을 안고 적 탱크 아래에서 자폭하는 등의 끔찍한 작전을 실행하곤 했는데, 현대적인 전쟁과는 맞지 않는 이러한 전근대적 사상은 가장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해군 비행단에서도 이루어졌으며, 이 작전은 폭탄, 어뢰를 비행기에 장착하여 말 그대로 적군의 함선에 추락시키는 것으로, 정확한 충돌을 위해 조종사가 끝까지 조종간을 잡아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작전이었다.

심지어 일본 해군은 이 작전을 정식 전술로 채택하여 실행했다. 가미카제, 즉 자폭을 목적으로 한 전투기인 Ki-115 츠루기, MXY-7 오카가 존재했음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당시 중일전쟁으로 일본 파일럿들의 실전 경험 수준이 상당히 높았으며, 애당초 파일럿은 양성까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중요한 인력임에도, 이를 자살 작전으로 낭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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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채널 / 카미카제 공격을 실시하는 일본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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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 가미카제 작전에 투입되는 일본 파일럿들. 이 중에는 조선인들도 있었다고.

어떻게 이런 작전이
실행될 수 있었나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에서 비롯된 호승심,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생명 경시 사상은 이러한 미친 작전의 정신적 요인이라 한다면, 이러한 작전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실질적인 이유는 일본 해군이 처한 절박함으로 보아야 한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배로 일본 해군은 보유한 항공모함 대부분이 격침당했다. 반대로 미군은 높은 수준의 생산 능력으로 일본군이 입히는 간헐적 피해를 순식간에 회복, 점점 더 전투에 능숙해지기까지 하면서 통상적인 전략으로는 일본군이 미군에 피해를 줄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린 것이다. 

이에 일본군은 1년간의 논의 끝에 레이테만 해전에서 가미카제를 투입했으며, 군부 역시 이를 현장에서의 자발적 참여를 조건으로 이를 허가한다. 첫 작전인 레이테 만 해전에서 미군 항공모함을 격침, 구축함 3척을 손상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나 이는 얼마 가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피해를 보았던 미군이 점점 이에 대응하면서 가미카제로 인한 미군의 손실은 점점 줄었고, 결과적으로 필리핀해 해전에서는 476대의 일본 항공기가 격추 당한 반면, 연합군의 군함은 단 1척도 침몰당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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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소니언 매거진 / 가미카제에 투입되는 파일럿에 환호하는 일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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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apan times / 가미카제 작전에서 생존한 일본군 파일럿의 회고

끔찍한 작전
당시 일본인들도
경악했다고

전후 미군은 이 가미카제 작전에 대해 느꼈던 혐오와는 별개로, 이를 엄연히 하나의 전술로 인식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분석하면 할수록, 오히려 가미카제 작전을 실행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공격했을 때와 가미카제 작전을 실행했을 때 적에게 입히는 손실은 비슷했거나, 혹은 전자가 더 높았다는 분석이 나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미카제 작전에 투입된 3,800기의 일본군 항공기, 그리고 동일한 수의 파일럿을 희생시킨 결과는 47척의 군함 뿐이었다.

당시 일본 해군의 에이스 파일럿들 역시 이러한 정신 나간 작전을 명령한 군부에 대해 욕을 아끼지 않았으며, 당시 투입되었다가 생존한 이들이 최근까지도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미친 짓이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또한 이 자살 작전을 지시했던 일본 군부의 장성 중에서 실제로 일본이 항복한 이후 자살한 이들은 이 작전을 고안했던 오니시 다키지 중장을 포함해 소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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