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NASA의 아픈 과거
우주왕복선의 폭발
예고된 재앙이었나?

%EC%B1%8C%EB%A6%B0%EC%A0%80%ED%98%B8

최근 한국이 지난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해 인공위성을 계획된 궤도에 안착시켰다고 공식적으로 알렸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7번째로 1t 이상의 실용적 인공위성을 우주 발사체에 실어 자체 기술로 발사한 우주 강국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여기서 ‘우주 강국’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당연하게도 미국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미국은 NASA 미합중국 항공우주국이라는 정부 기관을 가지고 있고, 우주 관련 연구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그런 NASA에서 우주왕복선 역사상 가장 창피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과거가 있는데, 그 사건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자.

1 15

발사 73초 만에
폭발 사고로 전원 사망

1986년 1월 28일 궤도선 첼린저호의 10번째 비행이며, 미국의 우주 수송 시스템의 25번째 발사였던 STS-51-L,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발사 후 73초 만에 우측 부스터 로켓 고장으로 폭발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챌린저호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은 미합중국 공군 중령과 민간인 교사, 휴즈 항공기 회사 우주개발부문 직원, 2번째 여성 미국인 우주비행사, 미합중국 해군 중령, 미합중국 공준 중령 그리고 레이저 물리학자인 두 번째 흑인 우주비행사가 탑승했다. 이들은 모두 우주왕복선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전원 사망했다.

2 28

사망자 대부분은
현역 군인이었다

챌린저호에 올라탄 승무원 중 가장 큰 비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바로 군인들이었다. 챌린저호의 미션 스페셜리스트였던 미합중국 공군 중령 엘리슨 쇼지 오니즈카는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이었다. 그의 첫 미션은 국방부 기밀 미션인 STS-51-C였다.

또 다른 군인 마이클 존 스미스는 챌린저호의 조종사로 미합중국 해군 중령이었고, 해당 미션 이후 STS-61-l의 미션 파일럿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프란시스 리처드 “딕” 스코비는 챌린저호의 미션 사령관으로 미합중국 공준 중령이었다. 그는 X-24 리프팅 보디 테스트 파일럿 출신으로 첫 미션은 STS-41-C를 맡았다.

3 23

챌린저호가 해야 했던
여러 가지 임무들

챌린저호의 본래 목적은 NASA의 TDRS 통신망 구축에 쓰일 TDRS-2 위성 전개를 위한 것이었지만, 일각에서는 우주에서 이루어지는 원격 수업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NASA는 1985년 우주 교사 프로그램을 기획해 민간인 교사가 우주왕복선에 탑승해 직접 과학 실험을 진행해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려고 했다.

또 다른 임무는 1986년 초 핼리 혜성이 지구에 접근하던 시기로 우주에서 관측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챌린저호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NASA가 핼리 혜성을 관측하기 위해 무리했던 것으로도 보인다”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4 18

“과실 인정 못해”
참사를 부정한 NASA측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면서 생방송으로 사고 상황이 전국에 송출되었다. 그 충격으로 당시 레이건 정부는 챌린저호가 폭발하게 된 원인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고, 결론으로는 내부 조직의 의견을 묵살한 채 발사를 진행한 조직문화의 폐쇄성이 사고를 유발했다고 판단했다.

자세한 원인으로는 로켓에 고체연료 핵심부품인 고무 O-링이 추운 날씨로 인해 금이 가면서 연료탱크에 화재가 발생했고 그 원인으로 발사 중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기술진들은 상부에 보고했지만, 당시 NASA 상부는 “확실한 증거를 대라”는 면박에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1
+1
0
+1
5
+1
3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

금주 BEST 인기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