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력에 관심 없던 미국
빌리 미첼의 강력한 설득
폭격기 돈틀리스의 탄생

세계 1차대전 당시 미국 의회는 군용 비행기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져, 독일이 1,000기에 가까운 항공기를 동원할 때 단 55대의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군인 빌리 미첼은 공군력의 중요성을 미리 깨닫고 유럽에서 관련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는 미국도 항공기와 폭격기에 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많은 자금을 지원받던 해군은 이를 비웃었다. 이에, 빌리 미첼은 급강하 폭격을 통해 폭격기가 비싼 전함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 능력치를 극대화한 기체가 ‘SBD 돈틀리스’이다.

명중률과 방어력 고루 갖춘
폭격기 ‘SBD 돈틀리스’

192~30년대 당시 기술력으로 수평 비행 중 폭탄 투하는 명중률이 상당히 떨어졌고, 이 때문에 수직 낙하하며 폭탄을 떨어뜨리는 폭격 전술이 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타국에서 운용되던 급강하 폭격기들은 공기 저항을 버티지 못해 기체 조종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돈틀리스는 기체 플랩에 구멍을 잔뜩 뚫는 신기술을 도입하여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했고, 이 덕분에 압도적인 명중률을 자랑했다. 더불어, 후방석에 탑재된 M1919 기관총으로 따라오는 기체를 격추할 수 있었고, 12G에 달하는 중력 압박도 이겨내는 튼튼한 골조로 제작되어 미 해군의 전천후 폭격기로 거듭나게 되었다.

일본 항모 4대 단숨에 제압
미드웨이의 영웅이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돈틀리스는 미 항공모함의 함재기 역할을 하면서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기존에 폭격기 임무를 수행하던 ‘TBD 데바스테이터’ 뇌격기대대는 최악의 폭격 적중률로 그 어떤 활약도 하지 못했는데, 비행 성능마저 일본 해군의 ‘제로센’보다 못해 거의 농락을 당하고 있었다.

일본의 항모들이 미드웨이 기지 공격을 마치고 돌아와 함재기와 폭탄들을 정비하고 있던 도중, 미 해군의 돈틀리스가 등장해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공격으로 단 5분 만에 일본의 정예 항공모함 3대가 침몰했고, 반격하던 1척이 추가로 파괴되어 전투 한 번에 4척의 정규 항공모함이 침몰당하였다.

돈틀리스의 교훈 없었다면
F-22 랩터도 불가능했을 것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기를 잡은 이후로도, 돈틀리스는 여러 전투에 투입되며 일본군을 괴롭혔다. 이후 1943년부터 신예 급강하폭격기 ‘SB2C 헬다이버’로 대체되기 시작했는데, 비행 성능이 한참 떨어졌지만 조종성과 안정성이 뛰어나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활약을 이어 나갔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면서 돈틀리스는 전량 퇴역 절차를 밟게 되었고, 그때까지 총 5,396대가 생산되며 인기와 성능을 스스로 증명했다. 현재 F-22 랩터 등의 비현실적인 공군력을 자랑하는 미국에 빌리 미첼과 돈틀리스는 군용 기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선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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