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지원 호소하는 우크라
서방국 논의 정황도 관측
엇갈리는 주요국 정상들
미국과 독일의 전차 지원 및 재수출 승인이 확정되자 우크라이나는 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 등 고위력 무기를 제공해달라고 호소했다. 유리 삭 우크라이나 국방부 보좌관은 “우크라이나의 다음 과제는 전투기 도입”이라며 “우리가 서방 전투기를 얻는다면 전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 유리 이나트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대비 5~6배 많은 전투기를 동원하고 있으며, 영공 방어를 위해 서방제 전투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력 기종으로 F-16 전투기가 떠오르자 미 국방부와 록히드마틴, 유럽 내 운용국에 대한 지원 압박이 가해졌고, 실제로 서방국 사이에서 전투기 지원을 논의한 정황도 잇따라 등장했다. 크리스토프 호이스겐 뮌헨안보회의 의장이 “러시아의 침공으로부터 방어를 더 잘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공급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본다”라고 말하자 관심의 추는 서방 주요국 정상들로 기울었는데, 전차 지원 때와 달리 의견이 갈리는 양상이다.
가능성 열어 둔 마크롱
조종사 훈련 방안 추진
지난달 30일 네덜란드 헤이그 비넨호프 의사당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전투기 지원 가능성에 대해 묻자 “원칙적으로 아무것도 배제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명분만 있다면 무기 지원 수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그의 발언에는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조건이 있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먼저 요청해야 한다’와 ‘절대로 긴장을 고조하는 것이면 안 된다’,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면 안 된다’, ‘프랑스군의 전력이 약해져선 안 된다’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정식으로 전투기를 요청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튿날 파리에 방문한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기자회견에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에 세자르 자주포 12문을 추가로 공여하겠다고 밝히며 “우크라이나 전투기 조종사를 훈련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능성을 시사한 프랑스와 더불어,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는 전투기와 미사일, 전차가 필요하다”라며 “우리가 대응에 나서야 한다”라고 밝혔다.
“No”라고 짧게 대답한 바이든
독일·영국은 진작에 발 뺐다
프랑스는 F-16 운용국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지만, 각국 F-16 전투기가 우크라이나로 향하기 위해선 개발국인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낼 가능성이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No(아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해당 질의는 이동 중에 진행되어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없었고, 현재 미국이 준비하고 있는 22억 달러(한화 약 2조 7,093억 원)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 패키지에는 사거리 150km의 ‘지상 발사 소직경 폭탄’ 시스템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바이든 미 대통령의 거부 표현에 앞서 독일과 영국 등 서방 주요국들은 일찌감치 단호한 거절 의사를 밝혀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레오파드2 전차 지원 당시에도 전투기 지원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고, 최근에도 “전투기 지원 논쟁에 돌입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대변인 역시 “영국군 소속 타이푼과 F-35 전투기는 조종법을 배우는 데 수개월이 필요하다”라며 “그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다”라며 전투기 지원설을 일축했다.
전차처럼 전투기도 지원될까
미국 내 여론 악화 걸림돌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과 회담을 마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모든 종류의 지원이 처음에는 매번 거절 단계를 거친다”라며 “실질적 가능성 검토 이후 우크라이나군 훈련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며, 결국 장비가 이전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금기처럼 여겨지던 전차 지원을 불과 수주 만에 확정했다. 다만 전투기 지원 논의는 순탄치 않으리라고 전망되는데, 최근 미국 내 여론이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성인 5,152명을 상대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6%가 ‘우크라이나에 너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라고 응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인식은 개전 초 7%에서 5월 12%, 9월 20%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악화하는 여론과 더불어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대규모 지원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전투기 지원 관련 불협화음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