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까지 원하는 우크라이나
서방 지원 수위 또다시 높일까
미국에 가해지는 조용한 압박
미국과 독일의 잇따른 전차 지원 결정 이후,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 등 고위력 무기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화상 연설을 통해 “상황이 매우 어렵다”라며 “우리는 사거리 297km의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간 미국과 서방 주요국들은 러시아 본토 타격으로 인한 확전을 우려해 중화기 지원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안보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주변국 압박이 거세지자 불과 몇 주 만에 지원 수위를 대폭 올렸다. 이에 유리 사크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고문은 로이터를 통해 “이제 핵무기 말고 우리가 얻지 못할 것은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레오파드2 전차 재수출 승인 여부를 두고 머뭇거리던 독일이 거센 비판에 직면했듯, F-16이 우크라이나로 향하려면 개발국인 미국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리고 이를 의식한 듯, 최근 펜타곤 내에서는 F-16 전투기를 제공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미 국방부 관계자의 증언
“F-16 제공 여론 힘 얻는다”
현지 시각으로 1월 28일,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F-16을 우크라이나에 보내자는 의견이 펜타곤에서 힘을 얻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논의에 정통한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한 해당 보도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습으로부터 방어 능력을 갖추도록 미 국방부가 F-16 지원 승인을 조용히 추진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익명의 펜타곤 고위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우리가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무기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F-16 제공이 의회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F-16 제공이 최종 결정되더라도 조종사 양성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에 우크라이나는 승인에 앞서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시작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투기 제공에 핵 위협 고조?
미 관리, “F-16은 그 정도 아냐”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최종 승인에 앞서 우크라이나 전투기 조종사 훈련이 시작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유로는 첨단무기 지원을 의식한 러시아의 핵 위협을 꼽았는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다보스포럼에서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강화 결의안에 대해 “핵보유국은 국가의 운명이 걸린 주요 분쟁에서 절대 진 적이 없다”라며 엄포를 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일부 미국 관리들은 “F-16은 1980년대에 개발되었으며 미 공군은 이미 일부를 퇴역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F-22 랩터나 F-35 등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지원은 확전으로 이어질지 몰라도, F-16 제공은 전장 환경에 치명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익명의 국방부 관계자는 “현실을 직시합시다, F-16을 놓고 핵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방국서 F-16 논의 이미 시작
선 긋는 독일과 회피하는 미국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최근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는 “우크라이나와 서방 동맹국들이 장거리 미사일과 군용 항공기를 모두 제공할 가능성에 대해 패스트-트랙 협상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봅커 훅스트라 네덜란드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가 요청할 경우 F-16 전투기 제공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할 것”이라 밝혔고, F-16 제조업체 록히드마틴의 프랭크 세인트 존 COO도 “F-16을 우크라이나로 양도하는 방안에 대해 서방국 사이에서 많은 대화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서방국들 사이에서는 F-16 제공 압박을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미국의 결정에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의 전투기 지원 요청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독일이 또 다른 논쟁에 돌입한다면 이는 신뢰하기 어려워 보이고, 국가 차원의 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을 뒤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숄츠 총리는 앞선 레오파드 전차 지원 발표 때도 “나는 전투기를 보내지 않겠다는 점을 일찍이 분명히 했다”라며 선을 그었기에 향후 당분간은 공고한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 국방부 대변인은 “F-16에 대해 발표할 것이 없다”라며 언급을 피했고 조나단 파이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도 “전투기 지원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직접적인 논평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