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호텔은 어디일까요? 아마 어떤 이는 포브스 세계 10대 브랜드인 삼성이 운영하는 신라호텔을, 또 다른 이는 국내 최대의 체인망을 구축한 롯데호텔을 꼽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략 50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고의 호텔은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에 있는 웨스틴조선호텔이었는데요.
1914년 개관한 이 호텔은 국내 특급 호텔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호텔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흥망성쇠를 함께해온 곳이죠. 특히 웨스틴조선호텔의 201호실은 한반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방이기도 한데요. 오늘은 이 호텔의 역사와 201호실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대 역사의 산실
올해로 개관 106주년을 맞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한 세기 역사를 간직한 이 호텔은 1914년 조선철도국이 세운 근대식 호텔인데요. 1910년 이후 각 철도간선이 완공됨에 따라 외국인의 서울 통과가 많아지자 서양식 호텔의 필요성이 생겨 건설한 호텔입니다.
호텔의 자리는 고종 황제가 과거 천신에게 제를 올리던 환구단의 터인데요.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일제가 환구단을 철거한 자리에 호텔이 지어졌죠. 개관 당시의 명칭은 ‘조선호텔’로 독일의 건축가인 게오르크 데 라단데가 설계를 맡았는데요. 4층 규모의 화려한 붉은 벽돌 건축물로 지어졌습니다.
정치 활동의 거점이 된 201호실
1945년 해방 이후, 조선호텔은 정치의 산실로 그 역할을 해왔습니다. 맥아더 장군과 하지 장군이 이끄는 미 군정의 사령부는 물론 이승만과 서재필 박사의 집무실을 대신해왔는데요. 이후 6·25전쟁과 격변기를 지나면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투숙하는 등 국빈들을 모시는 유일한 장소로도 거듭났습니다.
특히 ‘임페리얼 스위트’로 불린 201호실은 한국의 주요 인사들이 거쳐 갔던 곳인데요.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귀국 후 이곳을 자신의 본거지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 방을 떠난 다음에는 일본의 제124대 천황 히로히토가 이 방을 접수했죠.
이후에는 러시아 황제 고문관의 아들, 그리고 중경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에게 열쇠가 넘어갔습니다. 다음 주인은 독립신문을 창간했던 서재필 박사였는데요. 그는 반은 영어, 반은 한글로 된 독립신문을 호텔에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 201호실은 두 번의 개보수를 거쳐, 마침내 1998년 9월 프레지덴셜 스위트로 거듭나게 되는데요. 약 93평 규모의 이 스위트룸은 현재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나볼 수 있는 최고가 객실입니다. 1박 객실료가 무려 1,500만 원에 달하죠.
당대 최고의 핫플레이스
조선호텔은 최고급 호텔을 지향하던 만큼, 100여 년 전엔 보기 힘든 최신 서양 문물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개관 당시 욕실엔 좌변기가 있었고, 독일산 은그릇과 뉴욕에서 제작한 샹들리에도 등장했는데요. 대한민국 최초로 승객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건물도 바로 이 호텔이었죠. 당시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수직 열차’라고 불렀습니다.
서양의 최신 문물을 받아들인 국민들에게 조선호텔은 그야말로 핫플레이스였는데요. 이들은 호텔에서 에그 베네딕트와 타르타르스테이크, 커피, 아이스크림 등을 즐기며 신식 문물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뷔페와 댄스파티 등의 서구 문화를 처음 국내에 들여온 호텔이기도 하죠. 지하주차장을 처음 선보인 곳 역시 이 호텔입니다.
제2의 조선호텔로 변모
1970년에는 제2의 조선호텔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요. 한국 관광공사,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합작투자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 아래 현대식 건물로 재공사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사용된 공사비는 1,100만 달러로 약 131억 원 정도죠.
새단장해 문을 연 호텔의 건물은 지상 20층 규모로 재건축했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투자자가 웨스틴 호텔즈로 바뀌면서 ‘웨스틴조선호텔’로 개칭하게 되는데요. 국내 투자자로는 기존 한국 관광공사에서 삼성 그룹으로 바뀌면서 본격적인 호텔 사업 확대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덕수궁 석조전 쓸고 닦는 직원들
웨스틴조선호텔은 한때 국빈 전용 숙소 역할을 하던 과거의 명성과 비교하자면 현재는 평범한 호텔 중 하나입니다. 호텔이 개관할 당시에는 최신식 호텔로 명성을 떨쳤지만, 주변에 점차 초고층, 초대형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구식 건물이 되어버렸죠.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비즈니스호텔로의 변신을 꾀했는데요. 2006년부터 5년에 걸쳐 진행된 레노베이션은 무려 1,000억 원을 투자한 대공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호텔은 100여 년이 넘는 역사가 있기에, 이러한 역사성에 맞게 다양한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매달 한 번씩 덕수궁 석조전을 찾아 임직원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전문적으로 정비하고 있는데요.
‘황궁 정비의 날’로 불리는 이 봉사 활동에는 석조전의 목조 마룻바닥과 내부 장식품 닦기, 카펫 세탁과 정비 등을 진행하고 있죠. 웨스틴조선호텔은 “호텔이 1914년 환구단 터 위에 세워진 만큼 문화재에 빚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청소에 나섰다”고 밝혔는데요.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직원들도 지금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품으며 청소 봉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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